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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강해 (욥기 23장 14절~17절) 1-3

천국을보는눈 0 217

14절입니다.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목표점이 있습니다. 예들 들어, ‘너는 타자 칠 때 500타를 넘어야 해!’ 그럼 타자학원에서 500타를 칠 때까지 계속 시킵니다. , ‘너는 300타면 돼!’ 마찬가지로 300타를 칠 만큼 시킵니다. 그리고 너는 1,000타를 쳐야 돼!’ 했을 때 저 사람은 끝나는데 나는 언제 끝나는 건가요?’ 물으면, 가르치는 사람이 너는 1,000타를 돌파해야 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지정하신 지점이 있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를 이 정도로 만들 거야. ! 내가 너를 만들었는데 네게 이 정도를 원해. 다윗! 너에게 이 정도를 원해. 요셉! 네게 이 정도를 원해. 다니엘! 네게 이 정도를 원한다는 지점을 정하셨고, 하나님 생각은 일정하며, 뜻을 굽히지 않고 반드시 행하십니다. 반드시 행하신 것이 고난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데 다윗의 영성을 높게 잡으신 것입니다. 요셉도 17년 동안 고생하는데 원하시는 지점을 정하신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그 지점까지 고난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변화되어야 할 지점이 정해져 있습니다. 게으르게 느릿느릿하면 본인만 고생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우리를 만들어 놓으시는데, 우리를 구원케 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쓸 그릇으로 만들어 놓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뜻을 빨리 따르는 것이 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어차피 내가 통과되어야 할 내용들이 많이 있는데, 내가 게으르면 게으를수록 맞는 게 많아지는 것입니다. 10대 맞고 하는 것보다 1대 맞고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하셨는데 너는 구원까지만 와! 너는 복음전파까지 와!’ 정한 바가 다 있습니다. 그러면 300타 치는 자는 경리로 취직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불신자에게는 정한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각각 만들어질 때 정하신 지점까지 도달되어야 하는데, 그때까지 계속 고난으로 단련시켜서 더 세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난은 필수입니다. 고난이 없으면 천국 못 갑니다. 고난받지 않고서는 죄 성이 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고, 기도를 많이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고난을 받아야 변화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난받을 때, 나를 단련한다는 것을 믿고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요? 변화되어야 만날 수가 있습니다. 내가 변화되면 감지가 되고, 다윗처럼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변화되어야 천국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깊은 내면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변화를 통해 고난에서 해방도 되는 것입니다. 목표가 달성되면 잠시 쉬었다가 다음에 또 고난이 오는데 이 모든 것이 다 예정되어 있습니다. 고난으로 절망할까봐 쉬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오번역이며 그러므로 나는 그분 앞에서 아파하며 나는 묵상할 때 그를 두려워하리라입니다. 결론은 많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안 들을까요? 이유는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이 공경하고 따르는 큰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많이 당하면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이 생기는데 죄를 두려워합니다. ? 하나님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옥을 만드신 분이며 엄청 무섭습니다. 인간이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6절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내 마음이 약하니까 더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번역하면 내 두려움이 어둠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끊어졌기 때문이 아니고 그분이 내 얼굴 앞에서 어둠으로 가리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어둠에 휩싸여서 두려워하는 두려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두려움이 2가지 있습니다. 신적인 두려움과 사단적인 두려움이 있는데 지금 이것은 바른 두려움입니다. 바른 두려움을 가져야 하는데 오늘날 우리는 지옥 얘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싫어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운지 모르는데, 그 두려움을 느낄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거늘잠언 말씀에 나옵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갖는 모든 사고들입니다. 거기에 선과 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환경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함부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다 환경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자체가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꼼짝 마라입니다. 그게 고난이 주는 선물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고, 하나님을 잘 믿을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많은 왕들이 잘하다가 막판에 지옥으로 던져졌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웃시야는 굉장히 잘 섬겼는데 지옥 갔습니다. 그렇게 잘 섬겼는데 막판에 떠나면 지옥으로 던져집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하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운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봐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를 때는 하나님과 맞먹으려 하는데 하나님의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맞먹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시면 모는 것이 끝나기에 하나님 앞에 우리는 깨갱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 앞에 온전해지는 것만이 가장 좋은 지혜인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https://newjerseybethany.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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